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 (문단 편집) === 의문점 === 당시 유가족이 제기한 의문점들은 다음과 같다. [[파일:external/buksori.jinbo.net/sub02_3.gif]] ||- '''1.''' 신고자 최 씨는 당시 [[전과(범죄)|전과]]가 수십 개나 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 데다 피해자 유족과 만나는 것조차 극구 기피했다. 경찰은 가족들의 교통사고 이의신청에도 불구하고 정양이 행방불명된 이후의 행적에 대하여는 전혀 수사도 하지 않은 채 단순 교통사고라고 단정하고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 - '''2.''' 사고 현장에는 출혈이 거의 없는 데다 시신에는 속옷이 모두 없어진 채 겉옷만 입혀져 있었다. - '''3.''' 피해자 유족은 정양의 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물증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없어진 속옷 중 팬티 거들만 사고지점 확인에 나선 동료학생 임모 군에 의해 사고 현장에서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이 팬티는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지점, 즉 사고 후 차를 세웠다고 최 씨가 말한 곳 가드레일 아래 도로 가장자리에서 발견되었다. - '''4.''' 이상하게 여긴 피해자 유족이 모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정양의 시신의 속옷을 확인하려고 하자 해당 [[병원]] 영안실 직원 이모 씨가 바지 주머니 안감을 내보이며 그것이 팬티라고 하면서 가족을 속이려 했다.[* 이 씨는 2000년 방영된 PD수첩에서는 증언을 번복했다.] 거기다 사고 현장의 시신에는 원래 브래지어가 없었는데 병원에서 누군가가 깨끗한 새 것으로 입혀 놓았다. 더구나 경찰은 이 점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 - '''5.''' 밤 10시 40분 정양과 함께 학교 교문을 걸어 나간 박군의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졌다. 박군은 자신은 교문을 나선 이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박군은 '만취된 채로 잠을 자고 있었으며 그래서 아무 기억도 없다. 불과 20분 후인 11시경에 깨어 보니 학교 근처 S병원 앞이었고[* 참고로 이 병원은 사건 이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정양이 걱정되어 삐삐로 호출하였으나 회신이 없어 그냥 집으로 갔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진술을 했다. 하지만 수사경찰은 그 진술을 그대로 믿고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 '''6.''' 박군은 사고 발생일 영안실에 술이 취한 상태로 조문차 잠시 들렀다. 그리고 이틀 후 정양의 유족이 자세한 사고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왠지 끝까지 피하려 했고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몹시 화를 내자 마지못해 응하긴 하였으나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은 그저 '아무 기억이 없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만 하고 도망가듯 떠났다. 이후에는 아무리 연락해도 '아무 할 말도 없고 만날 이유도 없다'며 계속 피해 다녔다.[* 박군이나 운전자의 태도는 죄책감이나 과거 전과에 대한 걱정 때문 등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당시 가족들로서는 의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7.''' [[부검]] 결과 '역과(轢過, [[자동차]]로 깔아뭉개고 지나가는 것)로 손상에는 출혈이 없어 역과시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는데도 달서경찰서에서는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 '''8.''' 부검 담당이었던 모 대학교 곽 모 교수가 부검 결과를 가족에게 숨기려고 했다. 부검 의뢰 사항과 엉뚱한 부검 결과만을 보고하였고 부검 진행 사항과 부검 내용 등에 관하여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 '''9.'''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유족과의 협조를 굉장히 기피했다. 이런 사건에서는 피해자 유족에게 오히려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피해자 유족이 협조를 원하는데도 극구 거절했다. 교통사고가 아닐 가능성이 있는데도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증거를 대 봐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아예 수사 [[의지]]가 없었고 [[지문]]감식 같은 기초수사마저 기피했다. - '''10.''' 사고 운전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목격자가 있는데도 이를 숨겨 왔고 경찰 역시 이 목격자에 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덤프트럭 운전수 최씨에게는 항상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다니던 동료 트럭 운전수이자 목격자 최모씨가 있었다. 그러나 최씨는 자신에게 유리한 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목격자가 없었다고 진술했으며 유가족들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목격자 최씨가 사고 현장에 차를 세우지도 않고 2차선으로 바꿔서 지나쳤다고 말했다. - '''11.''' '주막촌'을 열었던 해당 학부는 왠지 서명운동에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박군은 정양의 동아리 친구로 자신이 술에 취해서 정양이 바래다 주려고 데리고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을 보면 피하고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으며 서명운동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 '''12.''' 담당형사가 가족이 수거해 온 속옷을 보고 '[[아줌마]] 속옷' 운운하며 정양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양의 [[쌍둥이]] 여동생은 언니 정양과 똑같은 팬티를 같이 선물받았므로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 '''13.''' '''결정적으로 무리 없을 정도로만 술을 마신 정양이 왜 박군을 인근 병원 앞에 그냥 두고 본인은 집과 반대 방향으로, 그것도 학교에서 4km 이상 떨어진 고속도로까지 갔을까?''' || 이처럼 의문투성이인데도 경찰은 피해자 유족더러 '교통사고가 아님을 증명해 오면 운전자를 당장 구속하겠다'고 하거나 피해자 가족이 박군을 다시 조사하거나 만나게 해 달라고 요구하면 '요즈음은 강제수사를 할 수 없다'는 등 무책임한 행태만 거듭했다. 더구나 납득할 만한 해명도 없이 그저 '단순 교통사고'라고 우기기만 했다. 용의자가 체포된 후에 보면 상기 의문점 중 상당수는 유가족의 주장처럼 계획적인 은폐나 전문범죄조직의 소행은 아니라는 게 확인되었지만 반대로 경찰이 무성의하고 비협조적이었다는 것 역시 확실히 드러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